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용흡은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주지면(朱地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2월 26일, 평양숭실중학교 교사 강봉우(姜鳳羽)와 신창리(新昌里) 교회
간부들은 독립만세운동 거사일을 장날인 3월 3일로 정하였다. 이에 앞서 함흥고등보통학교, 함흥농업학교, 영생중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함산(咸山)학우회에
서도 은밀히 시위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3일 새벽 4시 30분 서함흥
역전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밤을 세워 이 일을 각 학교의
지도급 학생들에게 연락하였다. 그런데 3월 2일이 되자 위의 계획과는 관련이
없이 이미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놀란 경찰은 3일 새벽 함
흥 전 시내에서 대규모의 예비검속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굴하지 않
고 3월 3일 대규모의 독립만세시위를 시작했다. 김용흡이 속한 주지면에서도 3
월 3일과 4일에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 후 김용흡은 3월 6일 주지면 흥상리(興上里) 출신 김재황(金在黃)을 비롯
한 13명과 함께 경찰순사주재소의 호출을 받았다. 이때 다수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면서 경찰서 앞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김용흡 등은 풀려나왔다. 다시 김용
흡 등은 3월 21일에 만세시위를 거행했으나 체포되었다.
재판에 넘겨진 김용흡은 6월 7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공소
하였으나 7월 25일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
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判決文(高等法院:1919.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