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평남 강동군(江東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강동군의 만세운동은 3월 7일 원탄면(元灘面)과 고천면(高泉面)에서 시작되었다. 이어 강동군 읍내에서 3월 30일과 31일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0일의 만세운동은 천도교인들이 주도하였다. 읍내와 인근에 사는 천도교인 400여 명이 태극기와 천도교의 궁을기(弓乙旗)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가행진을 하다가 군청과 면사무소, 그리고 헌병대 앞에서 경찰이 출동하자 흩어졌다. 31일에는 천도교인들과 더불어 인근의 농민들까지 참여하여 만세 참여자가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전날처럼 경찰이 저지하면 강하게 항쟁할 목적으로 낫, 호미, 몽둥이 등을 들고 나섰다. 원용일도 이날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8. 28)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86~3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