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용은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송포면(松浦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
다가 체포되어 태(笞) 90(度)를 받았다.
3·1운동 당시의 고양군은 지금보다 면적이 상당히 넓었다. 경성부의 주변은
전부 고양군에 속해 있었다. 동쪽은 동대문 밖으로 숭인면(崇仁面)이었고, 한지
면(漢芝面)은 왕십리에서 이태원까지 걸쳐 있었고, 그 밖으로 둑도면(뚝섬)이 있
었다. 서쪽으로 마초까지는 경성부였고, 애오개부터는 고양군 용강면(龍江面)이
었다. 아현북리(阿峴北里, 지금의 북아현동)는 연희면이었다. 이와 같이 고양군
은 경성부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질 때, 46세의 의생(醫生) 이용은 고양군 송포면
대화리(大化里)에서 1919년 3월 24일 오후 3시경, 최상돈(崔相敦) 등 약 30명의
군중과 함께 송포면사무소 부근에 모여 만세시위를 했다.
시위 후 4월 11일 체포된 이용은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
고 태 90도를 받았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6. 19)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