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노용주는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정평군 고산면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16일부터 벌어졌다. 이 시위는 면 내에
서 5차에 걸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3월 16일 고산면의 최병헌(崔炳憲)과 김기
룡(金基龍)은 풍송리에 모인 군중들을 이끌고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이들은
주재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이 시위는
다음 날인 17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었다. 3월 17일 박정림을 비롯하여 군중은 고산면 풍송리(豊松里) 소재 면사무소 및 풍송헌병주재소에서 조선독립만
세를 외쳤다. 풍송리의 시위는 3월 17일 풍서리(豊西里)와 구창리(舊倉里), 신경
리(新京里)로 옮겨졌다. 정구갑(鄭龜甲)은 동리 주민 약 40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풍송리 시위대와 마찬가지로 풍송리 헌병주
재소 앞까지 시위하고 해산하였다. 그 뒤 3월 18, 19, 20일 고산면 일대에 파급
되어 무려 5,000여명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위 후 체포된 노용주는 5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여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태 90도를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11)
- 刑事事件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690~6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