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함북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명천군에서는 3월 14일 하가면(下加面) 화대동(花臺洞) 거리에서 5,000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만세운동이 잇달았는데, 4월 8일 오전 11시 서면(西面) 우동동(雩東洞)에서 사립학교 교사를 중심으로 30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다 일경에 의하여 해산되고 주동인물 4명이 검거되었다. 이날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한동원도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했으나 같은 해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한동원은 이에 불복하여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기초한 의사 표현이지 범죄가 아니다. 그런데 제1심, 제2심에서 받은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하다"며 상고 이유를 냈지만 1919년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내 3?1운동(독립기념관, 2009) ⅰ권 317~319면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10. 11)
- 刑事控訴事件簿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1971) 제2권 7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