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배근은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강동군의 3·1운동은 3월 7일 원탄면(元灘面), 고천면(高泉面)에서 그 첫 봉화가 올라갔다. 이날 원탄면에서는 기독교인 500~600명 그리고 고
천면에서는 기독교인 약 50명이 집합하여 만세를 부르고 시위행진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조선총독과 경무총감은 이미 체포되었고, 그 밖의 관리들은 추방
되었으며 총독부 행정사무도 접수되었다고 외쳤다. 이 두 면은 강동 읍내가 있
는 강동면과 연접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원탄면과 고천면 읍내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0일과 31일 양일간에 걸쳐
벌어졌다. 30일 오전에 읍내와 부근에 사는 천도교인 400여명이 모여 태극기와
천도교의 궁을기(弓乙旗)를 선두에 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가를 행진하다가 군
청과 면사무소, 헌병대 앞에서 만세 삼창을 했으나, 경찰이 출동하여 군중들은
강제 해산당했다. 이튿날 31일에는 천도교인들과 농민들이 합세한 1,000여명의
군중이 읍내로 진격해 들어갔다. 읍내에서 경계 중이던 일본 보병부대와 헌병
대, 경찰이 즉시 출동하여, 저항하면 발포한다고 위협하면서 300여명을 검거하
였다.
이배근은 3월 27일 원탄면에 거주하는 이동찬(李東贊)이 이배근의 마을에 와
서, 서울과 평양 등에서 조선독립선언을 반포하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
을 전해주자, 이에 동의하여 31일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배근
은 1919년 6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8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8. 28)·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87~3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