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최향현은 경북 고령군(高靈郡)에서 고령경찰서 순사보
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3·1운동 당시 기독교 측의 주창자는 북장로파(北長老派)에 속하는 목사 이승
훈(李昇薰) 등으로, 일찍이 데라우치(寺內)총독암살음모사건과 관계가 있던 자
는 거의 참가하였다. 그들은 배일사상을 품은 쟁쟁한 인물인데, 천도교 간부들
이 독립운동을 결의한 다음 교섭을 해오자 기꺼이 이에 찬성을 표하였다. 이로
써 기독교도 중의 유력자 및 학생들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만세시위가 매우 집요하게 반복되었던 경북 의성군의 경우 운동 회수 16회
중 7회는 기독교 장로파 포교자의 지도에 의해 이루어졌고, 기타 지방에서도 기
독교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고령군 쌍림면(雙林面)에 살던 최향현은 고령경찰
서 순사보에게 "이제야 기독교도가 희망하던 시기에 도달하였다. 신도는 차제
에 죽음을 각오하고 운동에 전력하려 한다. 귀하도 조선인이다. 행동을 같이 하
자"고 권유함으로써 체포되었다. 고령군의 유지 최경현(崔敬賢)도 서병직(徐丙
稷), 최홍석(崔洪錫), 전하성(全夏誠) 등에게 독립의거 궐기를 종용하다가 검거
되어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0개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최향현은 1919년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0년 4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74~47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3) 別集 9권 3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6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