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서창림은 1919년 3월 평남 강서군(江西郡) 함종면(咸從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함종면의 독립만세시위는 3월 6일에 일어났다. 이곳은 진남포 서북방 약 60리 지점에 위치한 함종 구읍이었다. 서창림은 경성의학전문학교 출신의 개업의(開業醫) 강기팔(姜基汃)과 김정현(金鼎鉉)ㆍ이정연(李鼎淵) 등과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3월 6일 강기팔과 잡화상 김용수(金龍洙), 범오리(範五里) 거주 이능훈(李能勳)·오영선(吳永善) 등은 공립보통학교 교정에 500여 명 군중을 모아 놓고 일본기 게양대에 대형 태극기를 달아 놓았다. 군중들은 공중에 펄펄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고 모두들 감격에 벅차 환호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곳 시위운동에는 함종 시내뿐만 아니라 부근 일대의 발산(鉢山)·승영(升盈)·광덕(廣德)·계명(桂明) 등 각 동리에서도 참가하여 군중 총수 2,000여 명을 넘는 성황을 이루었다.
정각 정오에 강기팔이 등단하여 개회를 선언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만세를 제창한 후 가두시위에 들어갔다. 평화적인 행진이 끝날 무렵, 헌병대는 돌연 실탄사격을 가하여 군중을 해산시키면서 검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군중 가운데서 즉사자 1명, 중상자 1명을 내게 하고 피검자가 40여 명에 달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서창림은 1919년 5월 2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826, 827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