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박인송은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청룡리(靑龍里)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
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원군은 일제 강점 전 영유(永柔)·숙천(肅川)·순안(順安) 3고을을 합하여
신설한 군으로 영유에 군청을 두었다. 이 3곳은 기독교나 천도교회의 보급 그
리고 교회 소속 학교들을 통한 신교육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또한 군내 공덕면
(公德面) 소재 법흥사(法興寺)는 전국 33본산(本山) 중 하나로서 임진왜란 때 서
산대사(西山大師)가 승병(僧兵)을 모아 훈련하던 곳으로 항일 민족의식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군내 3·1운동도 자연 이 3곳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박인송은 주민들과 1919년 3월 5일 청룡리, 7일 백석리(白石里), 9일 숙천군(肅川
郡)에서 태극기 수십 장을 만들고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주민 160여 명과
함께 각 지역을 돌면서 계속적으로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박인송은 1919년 6월 1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상소했으나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는 재판장
에서 "조선민족의 당당한 의무로서 조선독립과 동족을 보안하기 위해 만세를
호창한 것으로 그 어찌 죄가 되고 그것을 죄라 하는 법이 있을 것인가"라고 독
립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8. 1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18~4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