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30년 6월 함남 신흥군(新興郡) 장풍탄광(長豊炭鑛)에서 사측의 부당한 처우에 반대하여 항일 동맹파업을 주도하고, 부당 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면서 세칭 신흥탄광습격사건(新興炭鑛襲擊事件)에 가담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풍탄광은 서울 남대문통(南大門通)에 있는 조선탄업주식회사(朝鮮炭業株式會社)가 경영하는 광산으로, 약 200명의 갱부가 1930년 5월 3일부터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갱부들은 무리한 구타 반대, 불경언사(不敬言辭)의 철폐, 임금 인상, 갱내(坑內)의 위험한 굴출역(堀出役) 반대 등 12개의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하였다. 4일에는 공장 인부와 검탄(檢炭) 인부 및 목공 인부들까지 파업에 가담하여 파업이 확대되었다. 파업이 격화되자 경찰은 파업 노동자가 외부와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식량 공급도 끊으려고 하였으며, 파업 기사가 보도된 신문조차 배달을 금지시켰다. 회사 측은 새로 노동자를 모집하는 동시에 경찰로 하여금 파업단을 해산시키려 하였고, 노동자들은 끝내 해산을 거부하고 경찰과 맞섰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ㆍ함흥노동연맹(咸興勞動聯盟)에서 간부를 현지에 파견하여 쟁의 조정에 나섰다. 이 조정에 따라 파업이 해결되어 노동자들은 취업하였으나, 회사 측이 갱부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갱칙(坑則)을 정해 갱부들에게 서약서를 강요하자, 다시 이에 대한 반대가 거세졌다. 회사 측은 갱부 이면송(李免松)ㆍ한두남(韓斗南)ㆍ김재준(金在俊)ㆍ이창조(李昌祚)ㆍ한철봉 등을 해고하였다. 이에 한철봉 등 해고 노동자들은 탄갱을 습격하기로 하고 습격대(襲擊隊)를 편성하였다. 1930년 6월 22일 새벽 2시를 기하여 탄광 사무소, 전기 발전소를 기습 파괴하고, 회사의 앞잡이 노릇을 한 간부와 광부의 집 8~9호도 공격하였다. 이때 한철봉은 권양장(卷揚場) 파괴조(破壞組)의 지휘자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1931년 7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騷擾)ㆍ건조물훼기(建造物毁棄)ㆍ기물훼기(器物毁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豫審終結決定書(咸興地方法院 : 1931. 4. 8)
- 判決文(咸興地方法院 : 1931. 7. 31)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0. 10. 6, 1931. 3. 20, 7. 24, 7. 26, 8. 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0권 207~2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