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41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생계부 비서, 1942년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 사원, 1943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판공실 비서, 1944년 3월 생계부 비서로 활동하였다.
본래 평북 의주(義州) 출신으로, 중국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에서 출생하였다. 13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개봉의 공무기차(工茂汽車) 학생이 되었다.
1937년 9월 국민당(國民黨) 정부가 육군기차병단을 편성하고 신병을 모집하자, 이에 입대하여 제4연에 편입되었다.
1940년 9월 중경(重慶)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창설되자, 1941년 당시 중국 기계화부대 군인으로 복무하던 그는 대한광복군에 가입하기 위해 소속 부대를 정식 탈퇴하려는 의지가 담긴 편지를 『한민(韓民)』 주필 엄대일에게 보내 알렸다.
1941년 3월경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생계부(生計部) 비서로 근무하였고, 1942년에는 임시정부 직원이자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官兵消費合作社) 사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3월 3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엄항섭(嚴恒燮)이 주석(主席) 판공실(辦公室) 주임비서로 임명됨과 동시에 그도 안우생(安偶生)과 함께 판공실 비서로 선임되어 1944년 3월 13일까지 근무하였다. 3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생계부(生計部) 비서로 선임되어 해방이 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1944. 8. 9)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대만편 105면
- 新韓民報(1941. 3. 20)
- 獨立黨 閔石麟(본명 閔弼鎬)이 보내 온 비밀문건(1941. 3. 15)(독립기념관 소장)
- 독립운동사료(국가보훈처) 중국편 547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1(국사편찬위원회, 2005) 267면
- 이청천이 중경시 사회국에 보낸 공문(1942. 11. 28)(독립기념관 소장)
- 大韓民國臨時政府公 제77호(1943.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