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3월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에서 대한북로독군부원(大韓北路督軍府員)으로서 군자금 모집을 하던 중 밀정을 처단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경 중국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 봉오동(鳳梧洞)의 독군부에 가입하여 단원이 되어 군사 교련을 받은 후, 동년 3월 15일에 단원 수십 명과 함께 함경북도 온성군 유포면(柔浦面) 풍리동(豊利洞)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동일 밤 9시경 풍리동 서편 산기슭에 이르러 단원들과 함께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망을 보고 있던 중 동리의 김주풍(金柱豊)이라는 사람이 군자금 모집원들이 침입하였다고 경관에게 급히 보고 하러가는 것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총을 발사하여 사살한 뒤 통행인에게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 및 강도·살인과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예심(豫審)이 결정되어 조선 최초의 치안유지법 적용을 받았으나, 이후 공판에서 치안유지법은 면소되었다. 1926년 5월 3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살인으로 징역 2년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8년 8월 3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6.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