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임석룡은 황해도 수안군(遂安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해도에서도 동부 산악지대에 속하는 수안, 곡산(谷山) 등지에는 일찍부터
천도교가 많이 전교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곳의 3·1운동 역시 천도교인들에
의하여 계획되었고, 또한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과감하게 전개되었다.서울에서 3.1운동이 펼쳐지는 그날,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에 의하
여 서울에서 보내온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에 관한 연락이 수안읍의 천도교 교
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전하여졌으며, 여기서 수안군의 만세시위에 관한 계획
은 급속히 진행을 보게 되었다. 3월 3일 다수의 천도교인들이 읍내 천도교 교구
실 앞으로 모이고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헌병분견대 쪽으로 나아갔다. 3
월 7일에도 수구면(水口面) 석달리(石達里) 홀동(笏洞)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
위를 하며 헌병주재소의 공격을 기도하고, 9일에도 석달리 주재소에 약 1백 50
명의 군중이 몰려갔다.
시위 후 체포된 임석룡은 1919년 10월 20일 경성지방법원 철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3) 別集 7권 11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62~267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