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3년 사진결혼(picture bride)으로 이제현·장경애와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를 출발하여 8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사진결혼은 미주한인들의 혼인풍습 중 하나였다. 같은 달 24일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서 이제현·장경애와 함께 합동 혼례를 올렸다. 남편은 김홍균(金鴻勻)이었다. 혼례 후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면서 1923년까지 활동하였다.
1915년 새크라멘토 한인교회 내에 설립한 한인엡윗청년회에서 학무국장으로 선임되어 교제국장으로 선임된 남편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8년 3월 3일 미주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지방총회(北美地方總會) 산하 새크라멘토지방회(朔都地方會)에 가입하여 회원이 된 이래 같은 지방회에서 1923년까지 활동하였다. 지방회 주최로 열린 1918년 2월 국민회 창립기념식에서 ‘기념가’, 같은 해 8월 국치기념식에서 ‘창가’, 1919년 3월 독립선언 축하회에서 ‘축하가’, 1920년 3월 독립선언 제2회 경축식에서 양제현 등과 ‘경축가’, 1921년 3월 제3회 독립경축식에서 ‘국기가’와 순국선열을 위한 ‘추도가’ 등을 부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23년 8월 5일 애국단 창립 5주년 기념경축식에서 애국단 총단(總團)에서 보내온 훈사를 낭독하였다.
이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전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3월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주최로 열린 삼일절 경축식 준비위원이 되었고, 1925년 2월 자신의 집에서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桑港支部) 회의를 열고 한국의 기근 구제를 위한 동정금을 모집하였다. 3월 대한여자애국단 총단 임원 선거에서 5인의 임원 중 1인으로 선임되었다. 1926년 3월에는 대한여자애국단 샌프란시스코지부 서기로 선출되었고, 8월 동지부에서 주최한 애국단 창립 제8주년 기념식에서 황보석 등과 ‘단군가’를 부르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이후에도 애국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부터 1942년까지 독립의연금 등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6집 211~212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3권 18, 48, 334, 386, 455면, 제7권 504면, 제17권 129면
- 방사겸 평생일기(독립기념관 소장) 3권 46면
- 신한민보(新韓民報)(1913. 8. 22, 8. 29, 11. 14, 1915. 8. 19, 1916. 12. 7, 1918. 2. 14, 3. 14, 8. 22, 9. 12, 1919. 2. 13, 3. 25, 5. 27, 7. 12, 7. 26, 9. 30, 10. 9, 1920. 3. 16, 1921. 3. 24, 1923. 8. 9, 11. 1, 1924. 2. 28, 3. 6, 1925. 2. 12, 3. 19, 5. 14, 9. 10, 1926. 4. 8, 8. 12, 1927. 3. 10, 11. 3, 1929. 3. 14, 4. 11, 1930. 1. 16, 1932. 12. 22, 1935. 6. 20, 9. 12, 1937. 8. 19, 10. 7, 11. 11, 1941. 5. 29, 7. 24, 1942. 3. 5, 6. 4, 6. 18, 1943. 1. 14, 7. 1, 11. 4, 1944. 7. 20, 12. 14, 1945.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