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장문경은 1919년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주군의 3.1만세운동은 민족대표 중 한 분인 목사 유여대(劉如大)가 직접 지도했다. 유여대는 2월 17일경에 정명채(鄭明采), 김두칠(金斗七) 등에게 장차 거족적인 독립 운동이 일어날 것이니, 이곳 의주에서도 거기에 대비하여 거사 준비를 하자고 하였다. 정명채, 김두칠은 곧 선언서 등사작업에 착수했고, 유 목사는 안석응(安碩應), 이원익(李元益), 김창수(金昌洙) 등에게 지시하여 1일 아침 선언서를 시내 각 관공서에 배포하라고 일러두었다.
3월 1일 하오 2시 의주서부교회 광장에는 약 1,000명의 군중이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지도부가 임시로 마련한 단상에 올라서서 개회를 선언하고, 찬송·기도의 순서로 진행 중 경성서 보내 온 독립선언서 백 장을 의주읍 서부동 거주 강용상(康龍祥)이 받아 가지고 왔다. 유여대가 선언서를 낭독하고 황대벽(黃大闢)이 독립 촉구 연설을 한 후, 일동이 독립만세 3창을 하고, 군중은 독립가를 부르며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다음날 3월 2일에는 남대문 밖 광장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이 날의 형세는 전날보다 더욱 성대하였고, 천도교측 최동오(崔東旿), 최안국(崔安國) 등이 독립운동 취지를 연설하였다. 이날 헌병대의 출동으로 약 30명의 시위자가 붙잡혔다.
3일에는 고종 국장일을 맞아 읍내에서 1,200명의 군중이 시위운동을 벌였다. 4일, 6일, 27일, 4월 1일에도 대대적인 시위운동이 연이어 벌어졌다.
시위 후 체포된 장문경은 1919년 6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3) 別集 7권 19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65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