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4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제1남지방부(南地方部) 군인으로 중국 화룡현(和龍縣) 및 함북 회령(會寧) 등지에서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북간도(北間島)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로도 불렸다. 북간도의 4개 현(縣)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각 촌락에 지회(支會)를 두었다. 회원은 약 8,000명이었으며, 1920년 초에는 지회의 수가 80여 개에 이르러 동만(東滿)의 독립운동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이후 독립전쟁을 추진하기 위해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후원하였으며, 1920년 초에는 안무(安武)를 사령관으로 하여 직접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고 각 지회에 교관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박준학은 1920년 4월 대한국민회 제1남지방부에 가입하여 같은 해 음력 7월경 유봉춘(兪鳳春), 최정수(崔正洙) 및 여러 동지들과 함께 화룡현 사대사(四對社) 증봉동(甑峯洞) 부근에서 밀정 윤달수(尹達壽)를 체포하고 신문(訊問)ㆍ처단을 주도하였다,
1921년 12월 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ㆍ살인ㆍ불법체포 등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9년 11월 21일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2. 4. 24)
- 刑事控訴事件簿
- 假出獄關係書類
- 東亞日報(1921. 12. 17, 1922. 1. 20)
- 朝鮮日報(1929. 10. 24)
- 每日申報(1921. 11. 9, 1921. 12. 17, 12. 18, 12. 19, 1922.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