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7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 사찰(査察)로서 회장 윤이병(尹履炳)이 주도한 고종 황제 강제 양위(讓位) 및 정미7조약(丁未七條約) 한일신협약 체결 반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동우회는 1907년 6월 '황실존중ㆍ청년교육ㆍ동양평화'를 표방하며 서울에서 창립된 단체로, 초대회장 이윤용(李允用)에 이어 부회장 윤이병이 회장직을 승계한 뒤, 고종의 양위를 전후하여 서울 내 군중을 이끌고 고종 황제의 강제 양위 및 정미7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18일 윤이병은 "황제의 행행(行幸) 및 양위와 한일 양국 간의 조약체결에 대한 방법을 일반 국민과 의논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동우회 회원들은 이날 군중과 함께 대한문(大漢門) 앞에서 시위를 하였다. 시위대는 포덕문(布德門) 앞으로 옮겨간 후 최원석(崔元錫)을 회장으로 하는 결사회(決死會)를 조직한 뒤, 정부대신을 처단하고 고종의 일본행을 막기 위하여 다음날 20일에 석고단(石鼓壇)에 집합하기로 하였다. 20일 윤이병 등 동우회 간부ㆍ회원ㆍ시위대는 석고단에 집합하여 고종의 양위를 반대하고, 총리대신(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의 집을 방화, 소각하자고 결의하였다. 병으로 먼저 귀가한 윤이병 대신 심원택(沈源澤)이 회장 대리가 되어 군중과 함께 서소문(西小門) 밖의 총리대신 집을 습격하여 방화하였다.
차춘성은 윤이병ㆍ심원택과 공동 행동을 통하여 고종 황제의 강제 양위와 정미7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다 체포되었다. 1907년 12월 29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書(平理院 : 1907. 12. 29)
- 大韓帝國官報(1908. 1. 23) 彙報
- 純宗實錄(1908. 1. 16)
- 日省錄(1908. 1. 16, 1. 22)
- 皇城新聞(1908. 1. 24)
- 大韓每日申報(1908. 1. 24)
- 海潮新聞(1908. 3. 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4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