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성오는 평안남도 순천군(順天郡)에서 일어난 독립만
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순천군의 3·1만세운동은 3월 2일 은산(殷山)에서, 4일에는 자산(慈山)에서, 그리
고 3월 5일에는 읍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은산에서는 천도교구장 김기수(金基洙)
가 주도하여 일어났는데 천도교인과 시민이 합세한 1,000여 명 군중이 만세를 부른
후 해산했다. 자산에서도 천도교구장 김선오(金善五)가 거사하여, 역시 천도교인과 시민이 합세한 1,000여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불렀다. 일본 경찰은 은산에서 시위
운동이 일어난 다음날인 3월 3일에 평양으로부터 장교 이하 21명의 보병부대를
순천에 급거 파견하여 대비 조처를 취하는 한편, 읍내 헌병대에서는 천도교구장
최단봉(崔丹鳳)과 예수교회측 김점환(金占煥)·유응진(劉應鎭)·표영각(表永珏)
외 7~8명을 불러 만세시위 운동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그것은 국치 직후에 일제가 지방세를 가혹하게 징수하던 소위 백일세(百一
稅)[시장에서 농민들이 판 농산물 대금의 1백분의 1을 거두는 세금]에 대한 반대
투쟁이 읍내에서 맹렬히 일어나 당시 읍내에 거주하던 일본인 1명만이 살아남
고 15명이 피살되었으며, 농민들 다수가 피검되었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
한 사태가 또 재발할까봐 미리 경고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3월 6일에 천도교인과 예수교인이 합세한 2,000여 명의 군중이 가두
시위를 벌였고, 강제해산을 당하면서 다수의 부상자와 검거자가 속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성오는 1919년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2) 別集 2권 15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393~394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