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3~1926년 국내에 진입하여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이후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근거를 둔 노농자위단(勞農自衛團)의 단장으로 활동하다가, 1931년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의주금융조합(義州金融組合)을 공격한 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5월 6일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신의주지청(新義州支廳)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동생 황찬화(黃贊化, 黃贊和, 黃瓚河)와 함께 2인단 장총대로 활동하면서, 동지를 규합하여 1923년 음력 4월과 1924년 음력 5월, 1925년 음력 3월, 1926년 음력 8월 등 1923년~1926년의 4년 동안 국내에 진입하여 의주군, 삭주군(朔州郡), 귀성군(龜城郡), 선천군(宣川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거둔 활동으로, 이들은 '국경의 흑선풍(黑旋風)'이란 별명으로 불리었다.
1925년 음력 10월경 정의부(正義府) 제3중대장 김석하(金錫下)의 부하로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중상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황찬화와 함께 중국 관전현 석두구(石頭溝)에 근거를 둔 노농자위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며, 1931년 1월 21일경 안동현(安東縣) 혼수보(混水堡) 주재소를 공격하였고, 동년 황찬화와 함께 의주금융조합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수행한 뒤, 동년 11월 27일경 관전현 나한구(羅漢口) 후구(後溝) 산중에서 동생 황찬화와 함께 안동현 경찰서원에게 체포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朝鮮日報(1931. 6. 13, 12. 2)·每日申報(1933. 1. 22)
- 獨立新聞(1925. 5. 5, 1931. 5. 2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新韓民報(1931. 1. 1)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142면
- 東亞日報(1930. 12. 8, 1931.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