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891년경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5년 7월 미국으로 유학하여 1928년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2년 3월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1938년 12월 하와이에서 한길수의 외교활동과 순행강연을 돕기 위해 중한민중동맹단이 결성되었고, 1940년 4월 북미에서는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후원하기 위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미주후원회연합회(美州後援會聯合會)가 조직되었다. 정덕근은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연합회가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 미주지부로 개편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정덕근은 1942년 중한민중동맹단 워싱턴 대표 한길수와 함께 워싱턴에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에서 중국에 있는 김원봉을 후원할 목적으로 1943년 8월 21일 독립을 창간할 당시 발기자로 참가하였다.
1944년 1월 2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주최로 각 단체 공동회의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총회관에서 개최되었는데, 정덕근은 조선민족혁명당 대표로 참석하여 군자금을 모아 연합회를 강화하자고 주장하였다. 1944년 7월 워싱턴으로 이동하여 한길수와 함께 활동하였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에서는 1944년 1월 30~31일 임시회의를 개최하였는데, 대한인국민회·조선민족혁명당북미총지부·대한여자애국단·유학생총회 대표 25명이 모였다. 정덕근은 조선민족혁명당 북미총지부 대표로 김강 등 5명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國際聯盟)과 같은 국제기구를 조직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회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45년 2월 22일 워싱턴에 있는 한인단체 대표들이 공식적인 회합을 가졌다. 정덕근은 한길수와 함께 중한민중동맹단을 대표하여 회의에 참석하였다. 회의 결과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한 미주 한인 단체들의 연명 청원이 결정되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5. 7. 22, 1918. 2. 21, 9. 12, 9. 26, 1919. 5. 3, 11. 29, 1921. 8. 25, 1926. 2. 18, 1927. 12. 22, 1928. 6. 21, 1929. 2. 7, 9. 26, 1930. 3. 13, 4. 10, 1932. 3. 24, 1944. 1. 13, 8. 3, 11. 16)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3. 24, 4. 21, 1934. 4. 24, 5. 15, 11. 2, 1935. 1. 23)
- 독립(獨立)(1943. 10. 6, 12. 8, 1944. 1. 5, 2. 3, 2. 16, 4. 13, 6. 28, 12. 20, 1945. 4. 11, 8. 29, 1946. 2. 6, 4. 17, 8. 28, 10. 16, 1947. 1. 29, 1948. 1. 21, 2. 4)
- 국민보(國民報)(1944. 4. 26, 1945. 1. 3, 3. 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제8집 735~736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4권 509면, 제7권 463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7) 제19권 218면, 제26권 2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