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평남 평양 출신으로 오승태의진(吳承泰義陣)에 참여하였는데, 1910년 6월 채응언의병부대(蔡應彦義兵部隊)와 연합하여 황해도 곡산(谷山)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남한대토벌작전(1909. 9. 1~1909. 10. 10) 이후 의병투쟁은 경상북도 소백산·일월산 일대와 황해도 일대에서 지속되었는데, 황해도 일대에는 이진룡(李鎭龍)·김정언(金貞彦)·한정만(韓貞萬)·채응언 등이 치열한 항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중 이진룡 휘하의 부장 채응언은 1907년 이후 황해도 안평(安平)·수안(遂安) 등지에서 순사주재소와 헌병분견소를 공격하여 일본 헌병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채응언은 1910년 국권 상실 이후에도 의병활동을 지속하여, 1910년 4월 강원도 이천군 가려헌병분견소 공격, 1910년 6월 강원도 이천군에서 강두필(姜斗弼)과 헌병 및 헌병보조원 사살, 그리고 1913년 6월 황해도 대동리 헌병분견소 공격 등 지속적인 항전을 전
개하였다. 1915년 7월 5일 평남 성천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동년 10월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오승태는 평양 출신으로 평양진위대(平壤鎭衛隊) 해산 군인으로 채응언의 휘하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유병수는 오승태의 휘하에서 1910년 6월 14일 곡산군 선암헌병파견소를 공격하여 일본 헌병 상등병 및 조선인 헌병보조원을 총살하고, 나아가 헌병 및 조선인 헌병보조원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1911년 5월 17일 체포된 유병수는 소위 강도살상인(强盜殺傷人) 및 방화죄(放火罪)로 기소되어 1911년 9월 5일 평양공소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동년 10월 14일 평양감옥에서 사형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11. 7. 19)
- 每日申報(1915. 8. 21, 8. 25)·朝鮮總督府官報(1911.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