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878년경 함경남도(咸鏡南道) 함흥군(咸興郡) 함흥면(咸興面) 중하리(中荷里)에서 태어났다. 191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 뉴욕항에 도착하였으나, 휴대금이 없어 미국에 입국하지를 못하였다. 그러다가 이승만의 주선으로 미국정부에 교섭하여 500달러의 보증금을 내고 미주 본토에 상륙하게 되었다.
1910년 11월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입회하였으며, 1911년 3월 레드랜드지방회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다가 1914년 5월 하와이로 이주하였다. 이후 다시 북미로 이주하여 리들리,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생활하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교민단령에 의해 미주 각 지방에서도 교민단이 설립되었다. 1924년 9월 로스앤젤레스 지방에서 윤병희는 전진·안상학·정수만·정지영·이병억·김순권과 함께 대한인교민단(大韓人僑民團)을 조직하였다. 로스앤젤레스 교민단은 이승만과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후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로스앤젤레스 교민단은 1929년 해소되어 로스앤젤레스 동지회에 합류하였다.
대한인국민회에서는 1936년 5월 1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한인사회 발전책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이 간담회에서는 노인 동포를 구제할 것, 한인 2세들에게 단결을 교양할 것, 임시정부를 후원할 것 등을 논의하였다. 윤병희는 이 간담회의 남캘리포니아 한인 대표로 참석해 한인사회 발전 및 독립운동 지원 방안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해 9월 17일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최진하가 윤병희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벌써 우리가 합동할 것이라는데 늦었지오. 그러나 우리의 일은 다 잘되지오”라고 미주 한인사회의 합동을 갈망하였다. 1945년 4월 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하였다.
1914년 이래 의무금, 인구세, 광복군후원금, 독립의연금, 임시정부 후원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0. 6. 1, 10. 26, 11. 9, 1911. 3. 5, 1914. 5. 20, 1919. 4. 24, 8. 23, 1920. 8. 26, 1921. 10. 27, 1922. 4. 6, 1930. 4. 24, 1933. 3. 15, 1934. 12. 27, 1936. 5. 7, 5. 21, 9. 24, 1937. 6. 17, 7. 1, 7. 29, 10. 28, 1938. 4. 7, 1940. 4. 25, 11. 7, 1941. 12. 8, 1942. 2. 5, 6. 18, 1944. 6. 22, 9. 15, 1945. 4. 14, 10. 4)
- 국민보(國民報)(1914. 5.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제8권 729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4권 3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