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박리근은 1917년 1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1919년부터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재무(1919), 시카고지방회 서기(1924), 뉴욕지방회 총무(1937)・집행위원장(1940) 등을 역임했다. 또한 1942년에는 뉴욕한인연합회의 재무에 선출됐다. 1923년에는 시카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했고, 1938년 뉴욕지방회 회의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할 것을 강조했다.
1944년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 후보집행위원에 올랐으며, 같은 해 12월에 열린 대한인국민회 제9차 대표대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됐다. 또한 1944년 9월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1941년 4월 오랫동안 분열돼 있던 재미 한인단체들이 독립운동 역량 결집과 임시정부 봉대를 위해 설치한 연합기관이었다. 1944년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1945년에는 중앙상무부 서기를 맡아 활동했다.
한편, 박리근은 1917년부터 1944년까지 독립의연금, 정부후원금, 광복군후원금 등의 명목으로 50여 회 이상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한민보(1917. 12. 20, 1919. 4. 17, 8. 5, 1923. 3. 15, 1937. 12. 9, 1938. 2. 10, 4. 14, 1940. 12. 19, 1942. 1. 8, 1944. 5. 4)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2005) 제19집 34~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