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5월부터 멕시코에서 노동하다가 1909년 12월 미주 본토로 이주하였다. 1910년 7월 미주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桑港地方會) 신입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이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동 지방회(羅省地方會)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10월 경찰원, 11월 서기 겸 평의원으로 활동하였고, 1912년 1월 북미지방총회로부터 의무금 수봉위원(收捧委員)으로 선정되어 로스앤젤레스 한인들에게 의무금을 수납하여 지방총회로 송금하였다. 1912년에는 동 지방회 대의원으로 지방총회에 참석하여 각종 현안을 처리하였다.
1913년 7월 7일 흥사단(興士團)에 입단하여 제23단우가 되었다. 1913년 학무에 이어 1914년에는 총무를 거쳐 1915년 회장이 되었다. 회장 시절, 동회 서기 유성숙(柳聖淑), 회원 박재형 등과 함께 북미지방총회 회장 이대위(李大爲)에게 제의서를 보냈다. 북미총회에 군부(軍部)를 설치할 것, 독립전쟁 예비금을 정할 것, 전비금(戰費金)으로 1인당 매년 22원씩 징수할 것 등을 규칙으로 제정하라는 요청이었다. 1916년에도 동 지방회 총무를 지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다. 1918년 9월 동 지방회 회장 백일규(白日圭)의 사임으로 회장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12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安昌浩)가 중앙총회 제2차 임시협의회를 개최하자,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파리평화회의와 뉴욕약소국동맹회에 한인 대표 파견을 결정하고 이를 위한 임시위원회를 조직하자, 7인의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19년 다시 동 지방회 회장으로 선임되고 그해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수립 소식이 전해지자, 경축식을 열고 취지를 설명하였다. 10월에는 청년혈성단 대표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취임식에 참석하여 축하사를 하였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1929년 2월 뉴욕지방회 총무, 1930년 부회장 겸 총무로 선정되어 활동하면서 자신의 집을 지방회 사무실로 제공하였다. 1939년 12월 1일 별세하였다. 1910년부터 1921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09. 12. 15, 1910. 8. 10, 1911. 4. 26, 7. 12, 10. 25, 11. 15, 1912. 2. 5, 7. 1, 1913. 6. 23, 6. 30, 10. 17, 11. 7, 12. 19, 1914. 4. 16, 5. 14, 8. 27, 1915. 5. 13, 7. 8, 10. 14, 11. 25, 12. 9, 1916. 2. 8, 2. 22, 4. 6, 6. 22, 7. 13, 11. 23, 1917. 9. 20, 11. 1, 12. 20, 1918. 6. 6, 10. 3, 11. 21, 12. 19, 1919. 1. 16, 3. 13, 3. 20, 3. 22, 4. 3, 4. 17, 5. 24, 10. 4, 11. 27, 1920. 4. 9, 1921. 11. 10, 1922. 12. 14, 1924. 5. 1, 1929. 2. 14, 6. 13, 1930. 1. 30, 10. 2, 11. 13, 1939. 12. 7)
- 안창호가 강영소에게 보낸 보고서(1913. 11. 9)
-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중앙총회(中央總會) 독립운동 의연록(1912)
- 흥사단 남방대회(南方大會) 회록(會錄)(1914)
- 도산안창호전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제7권 421, 842면, 제10권 574면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4권 145면, 제6권 193, 281, 556면, 제9권 33, 37, 62, 144면, 제10권 128, 353, 354, 410, 425~426, 464, 487면, 제11권 39, 192~200, 224면, 제15권 112, 114~119면, 제20권 15, 129, 1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