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23년 중국 화룡현(和龍縣) 덕신사(德新社)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소속으로 적기단원(赤旗團員) 마충걸(馬忠傑)과 연락하여 부민(部民)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북간도(北間島) 지역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 단체로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로도 불렸다. 북간도의 4개 현(縣)을 기반으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각 촌락에 지회(支會)를 두었다. 회원은 약 8,000명이었으며, 1920년 초에는 지회의 수가 80여 개에 이르렀다. 이후 독립전쟁을 추진하기 위해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후원하였으며, 1920년 초에는 안무(安武)를 사령관으로 하여 직접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고 각 지회에 교관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1920년대 초 만주에서 전개된 독립전쟁에 기여하였다.
강동익은 1923년 9월경 대한국민회 소속으로 적기단원 등과 군자금을 모집하다 같은 해 12월경 체포되었다. 1924년 5월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1925년 5월 병보석(病保釋)으로 출옥하였다. 1925년 9월 중국으로 탈출하여 망명생활을 하다 1934년 8월 함북 온성군(穩城郡) 훈륭(訓戎)에서 다시 검거되었다. 이후 청진감옥에서 복역 중, 급성폐렴이 발병하여 1935년 4월 30일 보석(保釋)으로 풀려난 뒤 치료를 받다가 1935년 5월 31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1923년 12월 중 間島(琿春縣을 포함) 및 接壤地方 치안상황에 관한 건(1924. 1.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7)
- 東亞日報(1935. 6. 3)
- 朝鮮日報(1935.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