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9년 6월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7년 이후 청년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6월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동월 11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마산지청(馬山支廳)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동년 11월 11일 마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1927년 7월 19일 동아일보 부산지국 기자로 임명되었으며, 동년 8월 7일 김연호(金然浩), 김계영(金桂影) 등과 함께 서면대회 형식으로 선출한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경상남도의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년 11월 16일 창원군(昌原郡) 상남면(上南面), 웅남면(熊南面)의 두 개 면을 합친 남면농민회(南面農民會) 창립준비회를 개최하였는데, 송재홍(宋在洪), 팽종수(彭鍾秀), 주병택(朱炳澤) 등과 함께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2월 7일 창원청년연맹을 해체하고 조직한 창원군의 단일(單一) 청년동맹의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동년 3월 27일 사망하여 당지 각 단체의 단체연합장이 거행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5. 12. 10, 1927. 7. 19, 1928. 3. 30, 4. 2, 4. 3. 4. 12)
- 中外日報(1927. 8. 14, 11. 22, 11. 24, 1928. 2. 12)
- 조선청년총동맹 전형위원회에 관한 건(1927. 6. 21)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