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부터 1937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5년 4월 한인 1,033명과 함께 멕시코로 노동 이민을 떠났다. 같은 해 5월 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에 도착하여 4년간 에네켄농장에서 일하였다. 1909년 5월 미주 국민회의 지원으로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설립되자, 창립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11년 12월에는 대한인국민회 와하케뇨 지방에서 농장 노동자를 모집하자 이주하였다. 1912년 1월 와하케뇨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를 조직하고 평의원과 서기로 활동하였다.
1918년 10월에는 멕시코혁명으로 해산하였던 데스칼지방경찰소를 다시 설립하고 서기로 선임되어 메리다지방회로부터 인준을 받았다. 1918년 11월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식자기계 청장 동맹자를 모집하자, 제33회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1920년 6월에는 이명원·김명순과 함께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산타페 지방위원으로 선정되어 구미위원부 재정 지원에 힘썼다. 1923년과 1924년에는 푸에르토 멕시코 예비지방회 회장, 1925년에는 베라쿠르즈예비지방회 회장이 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푸에르토 멕시코 예비지방회 서기로 선임되어 같은 해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1928년에도 서기로 활동하였다.
한편, 1928년경 푸론테라지방회는 오부리곤지방회로 변경되었다. 1929년과 1930년 오부리곤지방회 학무로 선정되었고, 1931~1932년 동 지방회 부회장, 1937년 3월 총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8년 4월에는 동 지방회 주최로 열린 안도산 선생 추도회에서 기도를 담당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오부리곤 지역 원동특파원 경비 모집위원이 되었다. 1939년 동 지방회 대표원, 1943년과 1945년에는 오부리곤 통신원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부터 1937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2. 1. 1, 7. 22, 11. 4, 1918. 1. 24, 8. 8, 11. 7, 11. 21, 11. 28, 1920. 7. 19, 1923. 7. 19, 11. 29, 12. 6, 1924. 4. 10, 1925. 7. 9, 10. 8, 12. 3, 1926. 4. 29, 1927. 3. 17, 1928. 1. 19, 11. 8, 12. 20, 1929. 12. 12, 12. 26, 1930. 10. 30, 11. 27, 1931. 1. 1, 12. 17, 1933. 7. 13, 1934. 3. 18, 1937. 3. 11, 3. 18, 1938. 5. 12, 11. 24, 1942. 4. 30, 1945. 1. 4)
- 미주 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147, 437면, 제3권 377, 390면, 제5권 372면, 제7권 400면, 제8권 408면, 제9권 47, 49, 108, 351면, 제16권 252, 449면, 제17권 387, 455, 509, 550면
- 재미불령선인(在米不逞鮮人)이 발행한 구미위원부(歐米委員部) 통신(通信)에 관한 건(조선총독부 경무국:1924. 8. 13)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구미(在區米)(7)
-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이자경, 1998) 314~3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