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6월 멕시코에서 대한인국민회 메리다 지방회 평의원에 선임되고, 1910년 군인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숭무학교 (崇武學校) 에 입교하여 훈련하였으며, 1912년 11월 묵경 (墨京) 지방회 부회장, 1913년 6월 동 지방회 회장, 1915년 11월 대의원, 1916년 2월, 1917년 11월 회장, 1919년 5월 멕시코 지방회 파출소 위원, 6월 동 지방회 대의원에 각각 선임되어 활동함.
1919년 9월 <신한민보>에 ‘배은망덕한 일본은 곧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하고, 1920년 3월 묵경 지방회가 주관한 독립선언 2주년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1910~1937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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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신한민보>에 ‘배은망덕한 일본은 곧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하고, 1920년 3월 묵경 지방회가 주관한 독립선언 2주년 기념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으며, 1910~1937년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메리다지방회를 창립하고 숭무학교(崇武學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1912년 이후 멕시코시티지방회(묵경지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1909년 5월 9일 북미지방총회 산하에 메리다지방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평의원에 선임되었다. 동 지방회 설립 직후 회장 이근영(李根永)은 유카탄 반도 세 곳에 경찰서를 설치하고 매일 병법체조와 군사훈련을 하는 등 숭무주의를 고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10년 2월 작둔 지방에 설립된 숭무학교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2년 10월 멕시코시티지방회 부회장, 1913년 회장, 1915년부터 1917년까지 대의원, 1917년 11월 회장, 1919년 5월 파출소 위원, 6월 대의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제2주년 경축식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7월에는 구역시찰원이 되었다. 1910년부터 1937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韓民報(1909. 6. 30, 1910. 1. 30, 1912. 11. 4, 1913. 6. 23, 1914. 4. 2, 1915. 11. 11, 1916. 2. 8, 1917. 3. 8, 11. 22, 11. 29, 1919. 5. 17, 6. 14, 9. 30, 11. 8, 1920. 4. 13, 7. 20, 1937. 10. 7)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1권 166면, 제3권 16면, 제7권 394면, 제8권 161면, 제20권 40, 67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김도훈 외, 2008) 제17권 2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