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대표원, 1914년 재무, 1915년 대의원회 의장, 1915~1916년 부회장, 1917~1918년 재무, 1920년 재무, 1920~1921년 부회장, 1922년 구제원, 1923~1926년 재무, 1928년 부회장, 1930~1931년 재무, 1932~1933년 부회장, 1934·1936년 학무, 1937·1944년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함.
1914~1916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서기, 1918~1919년 실업부원, 1923~1924년 학무, 1925년 구제원, 1926년 학무, 1927년 구제원, 1928년 학무, 1929년 구제원, 1935년 대의원, 1937년 감찰원, 1938년 교육위원·집행위원·선전위원·총무, 1941년 구제위원, 1944년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1913~1944년 삼일절·국치기념일 등 기념식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함.
1919년 청년혈성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청년혈성단 제군에게’, ‘최후 성공은 총과 칼에 구하라’ 등의 글을 『신한민보』에 기고하고, 1943년 한인시국회의 부회장, 1945년 공동실행위원회 교섭부원 등으로 활동함.
1913~1945년 여러 차례 자금을 지원하여 독립운동에 재정적 기여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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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1916년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서기, 1918~1919년 실업부원, 1923~1924년 학무, 1925년 구제원, 1926년 학무, 1927년 구제원, 1928년 학무, 1929년 구제원, 1935년 대의원, 1937년 감찰원, 1938년 교육위원·집행위원·선전위원·총무, 1941년 구제위원, 1944년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1913~1944년 삼일절·국치기념일 등 기념식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함.
1919년 청년혈성단 단장으로 활동하며 ‘청년혈성단 제군에게’, ‘최후 성공은 총과 칼에 구하라’ 등의 글을 『신한민보』에 기고하고, 1943년 한인시국회의 부회장, 1945년 공동실행위원회 교섭부원 등으로 활동함.
1913~1945년 여러 차례 자금을 지원하여 독립운동에 재정적 기여를 함.
※ 2025년 포상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2026년 책자 발간 완료 후 게시 예정이므로, ‘독립유공자 공적개요’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