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대한인국민회 (大韓人國民會) 메리다 지방회에서 서기, 1913ㆍ1914년 서기ㆍ재무ㆍ구제원, 1915년 회장 및 해동학교 교장, 1916년 동 지방회 실업부원, 1917년 재무ㆍ실업부원 및 해동학교 교장, 1918년 동 지방회 구제원, 1919년 재무ㆍ학무ㆍ재정조사원 및 유카탄지방 동포대표, 1920년 동 지방회 서기ㆍ재무ㆍ대의원ㆍ회계ㆍ구역시찰원, 1923년 구제원, 1930년 대의원, 1933~1936년 법무, 1937ㆍ1938년 집행위원장, 1939년 총무, 1940년 서기로 활동하면서 신한민보 (新韓民報) 에 애국을 고취 하는 글을 여러 편 게재하고 1945년까지 독립금 102원을 지원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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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김기창(金基昶)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회원으로 멕시코 메리다지방에서 활동하였다.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에서 서기를 맡았다. 대한인국민회는 분리되어 있던 미주지역 한인사회 단체를 1910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결성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단체였다. 조직의 목표는 미주 사회의 안녕과 자치 신장, 그리고 조국의 독립이었다.
이후 김기창은 동회(同會)에서 서기,재무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한인사회의 발전과 항일운동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에는 멕시코 정부에 청원하여 한인 자녀들을 위한 한인국어학교를 설립하여 동(同) 학교 교장으로 부임하기도 하였다. 1917년 동지(同地)에 해동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이곳에서도 교장의 직책을 맡아 학교 운영을 총괄하였다.
이처럼 김기창은 대한인국민회 회원으로서 멕시코 메리다지방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수백원의 독립자금, 즉 의무금,보조금,인구세,군사운동금 등을 의연(義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新韓民報(1909. 6. 23, 1911. 5. 10, 1913. 11. 28, 12. 26, 1915. 8. 5, 11. 25, 1917. 3. 1, 11. 1, 1919. 5. 3, 1921. 6. 2, 1930. 4. 17, 1932. 3. 17, 3. 24, 12. 15, 1936. 12. 10, 1937. 9. 22, 1942. 7. 30, 1944. 7.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2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