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의군단(義軍團) 소속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군단은 의군부 또는 대한의군단도독부 등으로 불렸으며 북간도는 물론 인접한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했던 의병장을 중심으로 1919년 4월경에 조직되었다. 이범윤(李範允),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김청풍(金淸風),김현규(金鉉圭),신립(申立),지우강(池雨江) 등이 주동이 되어 화룡현(和龍縣) 신봉동(新鳳洞) 명월구(明月溝)에 근거를 두었다. 간도 용정 국자가(局子街) 일대와 두만강 대안 각지의 일본 경찰과 한인 주구배들을 처단하는데 힘썼으며,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연합하여 청산리대첩 중 어랑촌전투(漁郞村戰鬪)에 참가하여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장태칠은 함북(咸北) 무산군(茂山郡) 풍계면(豊溪面) 용천동(龍川洞) 출신이며, 1919년 12월 간도(間島)에서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단원 및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4월 친일파 1명을 처단을 하였다가 체포되어 소위 대령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
- 朝鮮日報(1921. 7. 13)
- 咸興地方法院淸津支廳 第一審 判決抄本(1921.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