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국민부(國民府) 간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국민부는 1929년 4월 만주의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의 대표가 모여 조직하였다. 1929년 5월 28일 길림성(吉林省)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산하에 민사,경제,외교,군사,교육,법무,교통위원회와 중앙호위대 및 8개 중대의 군대를 조직했다. 또한 1929년 12월 이당치국(以黨治國), 이당공작(以黨工作)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민부를 영도하기 위해 유일당(唯一黨)으로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결성했다. 이때 독립군은 조선혁명당 산하 군사위원회 지도를 받는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으로 개편되었다.
국민부는 만주에 있는 한국인의 공안유지, 단일자치기관 실현, 한,중 양 민족의 협동작업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주로 농지,소작문제 해결과 교육에 주력하였다. 이후 국민부는 1931년 신빈사건(新賓事件)으로 간부들이 일제에 의해 체포되자 조직을 개편하여 조선혁명당의 한 부서로 편제되었다가 1934년 말 조선혁명군정부에 흡수되면서 해체되었다.
정지운은 평북(平北) 의주군(義州郡) 고율면(古律面) 연청(煙淸) 출신이며, 1931년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에서 국민부 경호국장으로 활동하다 집안현에서 중국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신의주 경찰서로 압송되었으며,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31.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