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참의부(參議府)에 소속되어 국내와 중국을 오가며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벌였다.
참의부는 1923년 9월 정식으로 결성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정식명칭이었다. 남만(南滿)의 집안(集安), 무송(撫松), 장백(長白), 안도(安圖), 통화(通化), 유하(柳河)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抗日戰)을 전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며, 국내진공작전(國內進攻作戰)에 주력하였다. 부대 편성은 참의장 겸 제1중대장에 백광운, 제2중대장에 최석순(崔碩淳), 제3중대장에 최지풍(崔志豊), 제4중대장 김창빈(金昌彬), 제5중대장 김창천(金蒼天), 독립소대장에 허운기(許雲起), 중앙의회의장에 백시관(白時觀), 민사부장(民事部長)에 김소하(金筱廈) 등이 임명되었다.
강진삼은 1922년 길림성(吉林省) 장백현(長白縣)에서 참의부에 가입하고 1927년 음(陰) 2월 김청산(金靑山), 차동산(車東山)과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에 들어와 황해도, 충청도, 함경도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0년 음 1월 2일 출옥하여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1931년 음 2월 다시 국내로 들어와 함경도, 강원도 등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가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징역(懲役)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1935년에는 경기도 가평(加平),포천(抱川), 강원도 회양(淮陽) 등지에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될 것'이라고 발언하였다가 구속되어, 강원도(江原道) 철원지청(鐵原支廳)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保安法 違反事件 檢擧에 관한건(江高 제1028호 : 1935. 5. 9) 警察狀報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102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32. 5. 25)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42권 3~6, 15~20, 24~26, 50~59, 60~69, 71~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