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4월 중국 (中國) 북경 (北京) 에서 조직된 다물단 단장 (團長) 으로 동년 (同年) 4월 상해 (上海) 프랑스 조계 (租界) 에서 3․1운동을 기념하여 조선 (朝鮮) 과 일본 (日本) 동경 (東京) 에서 친일파 암살과 파괴 등을 계획하였으며, 1925년부터 1927년까지 경기도 (京畿道) 안성 (安城) , 중국 북경․천진 (天津) , 경기도 (京畿道) 안성 (安城) 등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1926년 8월 경성 (京城) 동소문파출소 (東小門派出所) 를 습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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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租界) : 19세기 후반에 영국, 미국, 일본 등 8개국이 중국을 침략하는 근거지로 삼았던, 개항 도시의 외국인 거주지. 외국이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하였으며, 한때는 28개소에 이르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폐지되었다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황익수는 일찍이 만주 등지에서 조선독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1925년 4월 중국 북경(北京)에서 다물단을 조직하고 단장이 되었다. 이 단체는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했던 비밀결사였다. 다물단의 활동은 밀정 김달하(金達河)의 처단과 서동일(徐東日)의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등으로 대표된다.
1925년 4월 황익수는 상해(上海) 프랑스 조계에서 3.1운동을 기념하여 국내와 일본 동경(東京)에서 친일파 암살과 파괴 등을 계획하였다. 이후 단원들을 비밀리에 모집하는 한편 군자금 모집 활동도 전개하였다. 즉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중국의 북경과 천진(天津) 등은 물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국내에 잠입하여 서울, 안성 등지에서 수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러던 중 1926년 8월에는 서울에서 대담하게 단독으로 동소문파출소를 습격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29년 호북성(湖北省) 의창(宜昌)에서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上海 鮮人의 行動에 關한 件(3)(1920. 9. 25)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3)
- 北京 天津附近 在住朝鮮人의 狀況 報告書 進達의 件(1925. 3. 20) 朝鮮人에 대한 施政關係雜件 一般의 部(3)
- 東亞日報(1926. 8. 12, 10. 30)
- 外國에서 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 1934) 141면
- 3월 1일을 期한 騷擾惹起說에 關한 件(5)(1925. 2. 16)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3)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3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