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일제의 수탈에 반대하여 농민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순국하였다.
한시화는 1930년 함남 정평에서 정평농민조합에 가입하여 동년 8월 18일경 전투적 노동자,빈농에 알림이란 제목으로 '노동자,빈농으로써 일어난 혁명적인 단천(端川) 사건을 보라! 정치적 박해, 경제적 착취를 견디지 못하여 일어난 평양고무직공이 궐기한 동맹파업을 보라! 우리들의 끓는 피로써 나의 동지를 구원하는 장대한 투쟁을 전개하라! 싸움에 처한 역사적 필연성인 미래의 사회가 돌아왔다!'는 취지의 격문 원고를 김영두(金永斗)에게 등사용 원지로 옮기게 하고, 이봉래(李鳳來)와 함께 그 원고를 약 50매 등사 인쇄하여 그날밤 정평군 춘류면 화동리(禾洞里) 및 내동리(內洞里)에 반포하였다.
이로 인해 한시화는 1930년 11월 6일(음) 정평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취조를 받아오던 중 천연두,골막염 등으로 고생하였으며, 병보석으로 나와 함흥도립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1931년 4월 13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金章烈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3. 12. 14)
- 朝鮮日報(1931.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