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북 구성군(龜城郡) 남시(南市)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3월 7일 최예락(崔禮洛)은 선천군(宣川郡)의 김모(金某)로부터 독립선언서 500매와 주의서(主意書) 500매를 전달받았다. 이때 최예락은 관련 서류와 깃발을 양인항(梁仁恒)과 최성진에게 넘겨주면서 깃발 제작을 지시하였다. 이들은 지시대로 태극기와 독립기를 만들어 11일 남시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11일 오후 2시경 양인항은 최예락,안승열(安承悅),홍양천(洪陽天) 등과 함께 시장 중앙에 태극기를 높이 달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최성진은 계획대로 선언서와 주의서를 배포하였다.
남시에 모인 1,000여 명도 따라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발포로 최성진은 어깨뼈가 부서지고, 최예락,김진성(金振聲) 등 8명이 체포되었다.
이 시위로 붙잡힌 최성진은 1919년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집 7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58~459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