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방사겸은 23세 때인 1904년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1905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장경이 결성한 대동교육회(大同敎育會)에 참여하였다. 회원모집을 위한 순찰위원으로 미국 각지를 순행하면서 미주 한인들의 교육 진흥을 위해 노력하였다. 대동교육회는 1907년 정치적 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로 조직을 확대 발전시켰다. 이때 방사겸은 새크라멘토에서 회원을 확보하고 지방회를 설립하였으며, 프레즈노와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대동보국회 경찰소를 설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1908년 3월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가 친일외교관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하는 거사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주의 대표적인 단체인 공립협회와 방사겸이 관여하고 있는 대동보국회가 합동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일어났다. 이때 방사겸은 '양 의사의 대사건을 순로조이 치러 나가자면 두 회가 합하는 것이 옳다고'하면서 두 단체의 합동을 적극 찬성하였다. 1909년 2월 공립협회는 하와이의 합성협회와 합동하여 '국민회(國民會)'가 되었고, 1910년 '국민회'는 대동보국회와 합동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결성되었다.
방사겸은 그후 미국 시카고 등지에서 1923년 한국독립연구회(韓國獨立硏究會)를 창립하여 간사로 활동하였고, 1931년과 1944년 이후로 신한민보와 북미시보에 여러 차례 사설을 게재하여 재미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방사겸은 별세하기 3년 전에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여 순한글로 적은 평생일기 7권을 남겼다. 평생일기에는 한국인의 미주 이민과 독립운동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民報(1916. 2. 8, 1917. 10. 24, 1919. 4. 19, 5. 29, 1931. 12. 17, 1942. 6. 4)
- 北美時報(1944. 6. 15, 8. 15, 9. 1, 9. 15, 1945. 6. 15, 7. 1)
- 독립(1945. 4. 11, 6. 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8집 661~662면
- 방사겸 평생일기(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6)
- 容疑鮮人에 관한 건(兵庫縣知事 : 1923. 6.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歐米(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