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0년 강원도 평해군(平海郡), 경북 영양군(英陽郡) 일대에서 신대여의진(申大汝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의병장 신대여는 1909년 1월경부터 경북 영덕군(盈德郡)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정문칠(鄭文七) 의병장의 뒤를 이어 그의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1909년 7~12월 사이에 정문칠의진은 영해(寧海)ㆍ영덕ㆍ진보군(眞寶郡) 등의 지역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정문칠은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된 뒤 순국하였다. 신대여는 정문칠의 사후 스스로 덕남대장(德南大將)이라 칭하며 남은 의병부대를 이끌었는데, 경북 영덕ㆍ영해ㆍ청송(靑松)ㆍ진보ㆍ영양군 및 강원도 일대에서 점점 그 세력이 증가하였다. 1910년 5~6월에는 경북 영덕군, 강원도 평해군에서 활약하였다.
손경열은 신대여의진에 들어가 1910년 음력 10월 1일 강원도 평해군 근서면(近西面) 금천동(金川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10년 11월 8일 경북 영양군 동면(東面) 고월동(古月洞)에서, 같은 달 12일에는 동면 지무동(芝茂洞) 대양산(大陽山) 피정처(避靜處)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12월 19일 대구지방재판소(大邱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 : 1910. 12. 19)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