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대한국민노인동맹단(大韓國民老人同盟團) 단원으로 일제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독립운동자금 모집에도 힘을 쏟았다.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은 1919년 3월 26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는 청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일본 정부와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 제출, 서울 종로에서 독립만세시위 등을 전개했다. 사이토(齋藤) 총독 처단을 기도하였던 강우규(姜宇奎)도 노인동맹단 단원이었다.
동단(同團)의 창립취지서는 박은식(朴殷植)이 작성하였으며, 창립 당시의 간부로는 단장 김치보(金致寶), 총무 김순약(金舜若), 의장 이일(李逸)이며, 통신부장은 강택희(姜宅熙)였다. 창립 당시의 회원수는 320여명이었다.
송상원은 함북(咸北) 경성군(鏡城郡) 명간면(明間面) 산동리(山同里) 출신이며, 1920년 3월 서울 광화문(光化門)에서 대한민노인동맹단원으로 노인단(老人團)이라 쓴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조선 민족은 분기(奮起)하여 일본 제국의 기반(羈絆)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여야만 한다'는 내용의 통고문(痛告文)을 반포하다 체포(逮捕)되었다.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소위 정치범처벌령(政治犯處罰令) 위반 등으로 징역(懲役) 6월 집행유예(執行猶豫) 3년을 받았다.
이후 송상원은 1923년 10월 김좌진(金佐鎭)이 길림성(吉林省) 동녕현(東寗縣) 소수분(小綏芬)에서 조직한 성동무관학교(成東武官學校) 교우회(校友會) 회장으로 회원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新聞(1920. 4. 1)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4. 22)
- 最近 間島 및 接壤地方 不逞鮮人團의 狀況 等에 關한 件(琿瑃 分館 主任 및 百草溝 分館 主任의 報告에 의함 1924. 1. 1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