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20년대에는 일제의 부당한 통치에 저항하고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학생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나타났다. 1921년 11월에 양일석은 태평양회의를 기점으로 독립의 여론을 환기하고자 영흥학교 학생들과 시위를 계획했다.
이를 위하여 영흥학교 후배인 김옥남(金玉南)·김용문(金龍文)·박종근(朴鍾根) 등과 함께 기숙사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들은 11월 15일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남교동(南橋洞)과 죽동(竹洞)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시위가 지속되자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학생들도 합류하여 만세를 외쳤다.
이 사건으로 영흥학교 학생 4명, 정명여학교 학생 16명, 청년 5명이 기소되었다. 그로 인하여 양일석도 1921년 11월 16일 구류되고 12월 5일 기소되었다. 이어서 12월 23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 : 1922. 3. 1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동아일보(東亞日報)(1922. 1. 23, 11. 18)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2. 24, 12. 26, 1922. 1. 17, 2. 16, 3. 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926~9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