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황해도 금천군(金川郡) 산외면(山外面) 오봉리(梧鳳里)의 만세운동에 참여하려다 사전 발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금천에서 만세운동이 본격화한 것은 1919년 4월부터였다. 4월 1일 백마면(白馬面) 용성리(龍城里)에서 이상로(李祥老) 등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6일 산외면 신명리(新明里) 만세투쟁까지 매일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일본 군경들의 탄압으로 시위가 진정되어 가자, 서북면(西北面) 원산리(圓山里) 서당교사 강천성(康天成) 등은 각 면리의 구장들에게 격문을 보내 3월 7일 모든 금천군민에게 만세투쟁을 독려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오봉리 구장이었던 조천희는 7일 밀서 5통을 전달받았다. 조천희는 곧바로 최인식(崔仁植)의 집을 방문하여 8일 오후 만세시위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태극기 등을 전달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튿날 8일 시위계획을 알아차린 산외면 신장(新場)주재소 소장에게 소환되어 조천희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이 일로 조천희는 1919년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