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함남 장진군(長津郡) 신남면(新南面) 고토시장(高土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진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9년 3월 14일 신남면 고토리에서였다. 이날 오후 4시경 한영태를 포함한 주민 200여 명은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헌병들이 시위 군중에게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행을 가하자, 이에 흥분한 시위 군중들도 맞서서 저항하였다. 이에 헌병들은 군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였고, 시위 군중들은 헌병주재소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때 탈출한 헌병보조원이 하통리(下通里) 헌병대에 일본 헌병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다고 거짓 보고를 하였다. 이에 놀란 하통리헌병대는 하갈리(下碣里) 헌병대의 지원을 받아 즉시 출동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 군중을 무참히 짓밟고 해산시켰다. 이때 붙잡힌 사람만 1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처럼 200여 명에 대한 시위에 대해 일본군의 가혹한 시위탄압은 다른 지역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때 붙잡힌 한영태는 1919년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28~731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25)
- 每日申報(1919.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