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김천의 3.1운동은 김천면 황금정교회 김충한, 대구 계성학교 학생 김수길, 장로 최용수와 교회 소사 한명수 등이 3월 11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면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당일 오전 11시에 그 계획이 드러나 주도인물 4명이 체포되면서 시위는 좌절되었다.
이 일로 일본 군경(軍警)의 경계가 한층 삼엄해진 상황에서도 김영훈은 3월 24일 오후 11시경 김인수(金仁守)·김윤상(金允祥)·최응수(崔應洙) 등과 함께 김천면 욱정 길가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일로 1919년 4월 11일 붙잡혔다. 그는 1919년 4월 25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에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고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김천지청:1919. 4. 25)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58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329~3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