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평북 벽동(碧潼)에서 동지 수백 명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평북 벽동의 만세운동은 천도교 벽동교구에서 가장 먼저 추진하였다. 천도교 벽동 교구에서는 3월 10일 제1세 교조(敎祖) 순도(殉道) 기념일을 기하여 수백 명이 집합하여 기념식을 지낸 뒤, 독립선언서를 뿌리면서 시가지로 나가 일반 시민들과 기독교인이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들은 예수교회당 앞에서 만세 3창을 한 뒤 자진 해산했다. 그 후 3월 30일 읍내에서 200여 명의 군중들이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본군의 출동으로 해산하였고, 31일에는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군중 300여 명이 시가 행진하며 시위를 하다가 일본군의 출동으로 해산하였다.
이승범은 1919년 3월 31일 평북 벽동군 남문에서 동지들과 모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이를 군중들에게 알리는 한편 자신도 독립만세를 외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주모자로 몰린 이승범은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1. 3. 20)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