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서거로 국장에 참례하기 위해 권석인(權錫寅)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龍門面) 죽림동(竹林洞) 자택에서 상경했다. 권석인은 서울에서 체재하던 중 3.1운동을 접하고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귀가 후 권석호(權錫虎) 등과 협의하여 마을 주민들을 모았다.
그 결과 3월 23일 예천 호명면(虎鳴面) 오천동(浯川洞)의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3월 28일에는 오후 3시경 원곡동(原谷洞)에서 서당 학생인 장세환(張世煥)·장기원(張基元)·장기창(張基昌)·장정출(張正出) 등 11명이 마을 뒷편 산기슭의 서당 근처에서 종이 깃발을 흔들며 한국독립만세를 연호했다. 이들은 4월 3일 죽림동에서 약 30~40명의 주민들과 합세하여 용문면사무소에 도착했다.
이때 용문면 금곡동에 거주하던 장순창(張順昌)은 박내창(朴來昌)·박몽룡(朴夢龍)·박규수(朴珪洙)·변두구(邊斗九) 등과 함께 만세운동 대열에 합류했다. 약 100명의 군중들이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도로를 따라 금곡천 쪽으로 내려오다가 금곡헌병주재소 헌병들과 충돌했다. 헌병들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 주도자 17명이 체포되었다.
이처럼 장순창은 용문면 3.1운동에 참가하여 금곡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검사분국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4월 8일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5)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8)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8호)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3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