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강준익은 평안북도(平安北道) 창성군(昌城郡) 창주면(倉洲面) 출신이며, 1919년부터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1920년 3월경 길림성(吉林省) 관전현(寬甸縣)에서 체포되어 중국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동년(同年) 8월경 출옥한 후, 대한광복군사령부(大韓光復軍司令部)에 가담하였다.
대한광복군사령부는 1919년 12월경 대한의용군사의회(大韓義勇軍事議會), 한족회(韓族會), 기원독립단(紀元獨立團) 등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관전현 향로구(香爐溝)에서 통합을 위한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후 김승학(金承學), 안병찬(安秉贊), 이탁(李鐸)은 차례로 상해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전선의 통일기관 설치에 대한 동향을 보고하였고, 이 과정에서 임시정부는 이들 기관의 부서명칭을 결정하여 광복군참리부(光復軍參里部)와 광복군사령부가 조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준익은 대한광복군사령부 제1영(營) 제9대원(隊員) 및 공채모집(公債募集) 특파위원(特派委員)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1년 10월 19일 압록강변에 암장(暗葬) 당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新聞(192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