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당시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의 열기가 전국적으로 퍼지자 박망아는 의성군 지역에서도 만세시위를 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우희원(禹熙元) 등 전교생에게 함께 시위할 것을 권유하는 선전 선동을 했다. 박망아는 3월 11일 장날을 기해 비안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외칠 계획으로 같은 날 오전 11시 경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 150여 명을 교정에 있는 아카시아나무 아래로 집합시켰다. 이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나가려고 했으나 이곳으로 일본 경찰이 들이닥쳐 시위는 끝내 좌절됐다.
그러나 박망아는 우희원, 정인성(鄭寅成) 등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와 다음 날 12일 오전 9시 30분 경 교정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했다. 여기에 응한 다수의 학생이 모여들기 시작해 만세 소리는 커졌다.
박망아는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19.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