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28일 황해도 평산군 세곡면(細谷面) 누천리(漏川里)에서 관공서에 ‘한국기(韓國旗)’가 걸렸다. 3월 29일과 30일 평산면(平山面)의 군청·헌병주재소·공립보통학교·은담리(隱潭里) 등 마을 각처에 태극기나 깃발, ‘독립만세’나 ‘조선대한독립만세(朝鮮大韓國獨立萬歲)’라는 쪽지나 벽보 등이 게양되거나 부착됐다.
3월 31일에는 금암면(金岩面)과 인산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금암면 한포리(汗浦里) 시장에서 오후 9시경 불을 피우며 약 600명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1시경 인산면 기린리 기린시장에서 기린리와 건천리(乾川里) 주민들 약 150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면서기 서홍구(徐洪句)·정학규(鄭學奎)·엄윤영(嚴允榮) 등의 주도하에 점차 군중들이 늘어나 약 600명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기린헌병주재소 헌병의 진압으로 1명이 순국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4월 1일에도 오후 1시경부터 시장에서 약 50명이 독립만세를 외치고 오후 4시경에는 만세 군중이 약 400명에 이르렀다. 시장에서 헌병주재소로 이동한 군중들에게 주재소장이 해산을 요구하자, 군중들은 불응하고 주재소로 들어가 유리창, 창문 등을 파괴했다. 헌병들의 발포로 3명이 순국하고 추공집(秋公集), 김익현(金益鉉) 등 8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20명이 검거됐다.
하경수는 인산면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기린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어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됐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태 90도를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9. 22)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6)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전보:충남 경북 황해도 및 오소리의 시위운동 상황, 1919. 4. 1)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조선의 독립운동에 관한 건-차관이 시종무관장에 통첩, 1919. 4. 10)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전보:전국 각지의 4월 1일 시위 상황, 1919. 4. 2)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1)(조선소요사건일람표에 관한 건, 1919. 10. 2)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7)(독립운동에 관한 건 제35보, 1919. 4. 2)
-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7-7)(소요사건에 관한 상황 1919. 3. 26~1919. 4. 5, 1919. 4. 7)
- 대정(大正) 8년 소요사건(騷擾事件)에 관(關)한 도장관보고철(道長官報告綴) 7책(冊)의 내(內)(2)(황해도장관, 전보:평산만세시위, 1919. 4. 1)
- 대정(大正) 8년 소요사건(騷擾事件)에 관(關)한 도장관보고철(道長官報告綴) 7책(冊)의 내(內)(4)(황해도장관, 전보 ; 평산만세시위, 1919. 4. 2)
- 대정(大正) 8년 소요사건(騷擾事件)에 관(關)한 도장관보고철(道長官報告綴) 7책(冊)의 내(內)(4)(소요상황보고, 1919. 4. 23)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4)-조선에 있어 독립운동에 관한 4월 1일 이후, 1919. 4. 9)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4)-독립운동에 관한 건(제36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45, 2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