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홍영유(洪泳裕)는 중앙고보 5학년 학생으로 이재남(李載南)・안치구(安致九) 등과 반제국주의 ‘5년생 그룹’을 조직했다. 이들은 권우성(權又成) 등이 조직한 ‘제2학년 문화서클과 서로 제휴・연락하며 시사 문제의 비판을 하거나, 리플릿을 발행하여 일반 학생의 의식 고양에 노력하였다. 때마침 1933년 1월 하순 교무주임이 군대 환송영에 출장하라고 재촉하자, 이 기회에 같은 학교 학생들의 반전의식을 고취하여 다수 동지를 규합하고자 했다. 권우성・이재남・홍영유・안치구 4명은 격문의 작성・살포를 결의하였다. 권우성・홍영유가 협동하여 작성한 「노동자, 농민 및 근로학생 제군」이라는 제목의 원고 1부를 수정한 후, 2월 3・4일 양일 밤 이재남의 하숙집에서 이재남・홍영유・안치구 3명이 약 450매를 등사하였다. 다음 날 5일 오후 11시 30분경 위 3명은 그 격문을 휴대하고 중앙고등보통학교 본관 정면 창문으로 침입하여 각 교실에 약 40매씩 살포하였다.
1933년 2월 26일 구류된 상태에서 같은 해 3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34년 6월 11일 가출옥할 때까지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공판청구서(公判請求書)(경성지방법원 : 1933. 3. 11)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중앙일보(中央日報)(1933. 2. 26, 3. 12, 4. 13)
- 경성일보(京城日報)(1933. 3. 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3. 3. 12, 4. 8)
- 매일신보(每日申報)(1933. 3. 15)
- 1934년 3월 치안정황(治安情況)(1934)
- 경기도독립운동인물발굴사업보고서(수원박물관, 2018) 239∼2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