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1919년 3월 서울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상해로부터 들어오는 각종 신문 등을 인쇄,배포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1928년 미국 뉴욕에서 삼일신보(三一申報) 발기인으로 독립정신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앙학교(中央學校) 출신인 유기원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그는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중앙청년회관(中央靑年會舘) 졸업생 배운성(裴雲成), 보성학교(普成學校) 졸업생 장한준(張漢俊)과 협의하여 독립신문(獨立新聞)을 인쇄,발행하는 한편, 중앙학교 생도 최석인(崔碩寅) 등이 자유민보(自由民報)를 인계받아 개칭한 후 인쇄한 혁신공보(革新公報)를 전달받아 서울 계동(桂洞) 일대에 배포하였다. 이외에도 유기원은 동창생 박민오(朴玟悟)로부터 자유농종보(自由農鍾報) 제1~16호 초고를 교부받아 약 5개월 여 동안 등사기로 인쇄,배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 일로 종로경찰서에 붙잡힌 유기원은 1919년 12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일본 와세대대학(早稻田大學)을 거쳐 1924년 미국 오하이오주로 유학을 떠난 유기원은 1928년 3월 미국 뉴욕에서 삼일신보 발기인으로 민족정신 고취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제1권 분책 283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19. 11. 30)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12. 25)
- 東亞日報(1924. 3. 18, 1931. 2. 24, 9. 12)
- 移入輸入 不穩刊行物 槪況(朝鮮總督府)